전통 도자의 미학과 사유
Q. 오랜 시간 청자 작업에 몰두해 오셨는데 작가님께 청자는 도자기라는 매체 안에서 어떤 정신성과 미적 이상을 구현하는 대상이었나요?
A. 청자는 제가 스무 살 무렵 도자기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이자, 도자기 중에서도 가장 높은 난이도를 요구하는 분야입니다. 단순히 재료의 물성을 다루는 기술을 넘어서, 불이라는 과정을 통해 특유의 푸른빛을 온전히 유지하는 것이 매우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흙과 유약의 조합이 정확히 맞아떨어져야 크랙이 생기지 않으며, 순청자나 상감청자 등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기술적 진입장벽이 높아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영역입니다.
저 역시 청자를 처음 접한 이후 한동안 분청사기 작업에 더 집중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청자에 대한 실험과 연구는 꾸준히 이어왔습니다.
특히 저는 고려 초기 전성기에 제작된, 크랙이 거의 없는 '소문 청자'를 중심으로 연구해왔습니다. 이 시기의 청자는 문양이나 장식보다 조형성과 완성도가 중요시되었고, 화려함보다는 마치 국가적 이상을 담은 듯한 절제된 미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동시에, 당시 청자는 국가의 주요 교역품으로서 외국에 수출되었으며 국제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은 디자인이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천 년 전의 문화유산을 오늘날의 실생활에서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재현하고자 합니다. 청자를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냄으로써, 우리의 민족성과 문화를 더 깊이 이해하고 향유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Q. 청자 작업에서 분청 작업으로의 이행은 어떤 내적 질문이나 예술적 필요에서 비롯되었나요?
A. 사실 제 작업의 시작은 분청이었습니다. 청자는 비교적 최근, 약 5~10년 전쯤 어떤 계기를 통해 다시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지요. 당시에는 청자 차도구를 사용하는 이들이 거의 없었고, 주로 군청이나 분청을 기반으로 차도구가 제작되고 있었습니다.
분청은 조선 초기부터 존재했지만, 중기 이후 차 문화가 점차 쇠퇴하면서 함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근대 이후 차 문화를 새롭게 조명하는 과정에서, 일본에서 전해진 분청 사발이 차 도구로 널리 쓰이게 되었고, 이로 인해 분청이 마치 차도구의 원형처럼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고려 시대가 차 문화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로, 당시 청자 역시 차 도구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분청은 조선 시대의 미감을 반영하면서도, 청자와 달리 보다 회화적이고 유연한 표현이 가능한 장르입니다. 청자가 완벽성과 이상미를 추구한다면, 분청은 자유로운 손맛과 다양한 시도를 포용할 수 있는 매체입니다. 작업하는 입장에서 분청은 훨씬 더 넓은 표현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도자입니다.
요즘도 분청을 바탕으로 한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젊은 작가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Q. 청자와 분청은 조형성, 기법, 정신성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그 사이에서 작가님이 경험하신 가장 큰 전환이나 통찰은 무엇이었나요?
A. 청자는 이미 고려 시대에 국제적 가치를 지닌 도자기로 자리잡았습니다. 당시의 고려대장경이나 국제 행사는 지금으로 치면 엑스포와 같은 개념이었으며, 외국의 사신단이 방문하면 경제 관료와 상인들까지 동반하여 활발한 문물 교류가 이루어졌습니다. 중국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고려는 독자적인 조형미와 디자인을 창조해냈습니다.
고려는 불교 국가이면서도 도교적 세계관을 함께 지니고 있어 직선보다는 곡선을 중시했고, 씨앗이나 자연을 모티프로 한 장식들이 특징적입니다. 청자의 조형성은 유럽의 티팟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으며, 오히려 그 곡선미와 세련됨에서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청자는 단순히 한반도 안에 머무는 미감이 아니라, 국제적인 감각을 지닌 디자인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청자의 역사성과 조형미를 현대적으로 어떻게 계승하고 재해석할 것인가가 제 작업의 중요한 질문 중 하나였고, 이는 저에게 큰 예술적 전환점이기도 했습니다.
분청사기: 전통성과 현대성 사이
Q. 분청은 자유로운 표현이 특징적인 매체입니다. 전통 분청의 문양이나 조형을 현대적으로 재현할 때, 작가님께서 가장 중시하는 원칙은 무엇인가요?
A. 분청 작업에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은 ‘실용성과 조형성의 조화’입니다. 도자기는 결국 일상 속에서 사용되는 기물이기 때문에 손에 들었을 때의 촉감, 입에 닿는 느낌, 시각적 균형 등 실용적인 요소들이 반드시 조형성과 함께 고려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굽과 구연부의 비례는 시각적인 안정감에 큰 영향을 줍니다. 굽이 좁고 구연부가 넓은 기물은 시원하고 경쾌한 느낌을 주고, 반대로 굽이 넓고 구연부가 좁으면 보다 안정적이고 묵직한 인상을 전달합니다. 또한 몸체의 라인, 주구(물줄기가 나오는 부분), 손잡이의 각도 등도 실제 사용의 편리함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이러한 요소들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조율하며 작업하고 있습니다.
분청은 조형적 표현의 가능성이 매우 넓은 매체입니다. 특히 회화적인 표현이 잘 어우러지는 성질을 갖고 있어 시각적 자유도를 높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감성을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입니다.
Q. 분청 작업을 통해 작가님이 새롭게 확장하게 된 조형 언어나 감각이 있다면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A.분청은 조형 언어의 관점에서 볼 때, 유연함과 자유로움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매체입니다.
전통 분청기에서 자주 보이는 형태는 굽이 좁고 구연부가 넓은 구조로, 다소 불안정해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이런 미묘한 긴장감이 감성을 자극하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저는 이러한 불균형적인 요소들이 조형적으로 흥미로운 지점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이를 기단이나 형태 구성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작업하고 있는 고흥 지역은 분청 도자의 시작과 끝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입니다. 조선 중기의 가마터가 20여 개 이상 밀집되어 있어 이곳에서 원재료를 채집하고 복원 작업을 진행하며 당시 도자기의 미감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 유물들에는 해학적이고 편안한 조형 감각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구름 문양의 경우 그것이 구름인지 꽃인지 명확히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자유롭게 표현되어 있었고, 문양 자체가 어떤 규칙이나 대칭에 얽매이기보다는 작가의 감각에 따라 유연하게 펼쳐졌습니다. 복원 과정에서 단편적인 조각만으로는 전체 문양을 유추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는데, 이는 그만큼 당시의 표현 방식이 자율적이고 직관적이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저 역시 형태나 문양에서 ‘정해진 틀’보다는 ‘감각과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유연한 표현’에 집중하게 되었고, 이는 분청 작업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작가들이 분청 작업을 선호하는 것도, 이러한 자유로움과 표현의 확장성 덕분이라고 봅니다.
도자기, 손의 기억
Q. 청자 작업에서 수많은 실험 끝에 구현하신 ‘비색’은 작가님께 어떤 미적, 정서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나요?
A.청자의 비색은 매우 난해한 색입니다.
중국 청자는 보통 백색도가 높은 바디에 철분이 함유된 푸른 유약을 두껍게 발라 색에 중점을 두었지만, 고려시대 청자는 푸른 빛이 도는 맑은 색으로, 투명성과 맑음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이 맑음은 유약 두께에서 비롯되며, 이를 우리 식으로 비유하면 찹쌀 같은 느낌입니다. 또한, 물로 비유하면 깊은 강물이 아닌 맑은 개울이나 소에 담긴 푸르름과 같아, 깊은 바닥까지 맑게 들여다보이는 청자의 푸른 빛입니다.
이러한 청자는 우리 고유의 청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리도 아니면서 투명성을 지니고, 동시에 크랙(금)이 가면 안 되는 과학적 메커니즘의 복잡함이 있어 매우 어려운 색입니다.
이 때문에 많은 작가들이 청자 연구를 하면서도 난제를 경험했고, 옛 어른들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지금도 이 문제는 여전히 해결하기 어려운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Q. 청자와 분청은 흙과 유약을 다루는 방식부터 달라집니다. 두 작업에서 손이 기억하는 감각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A. 지금도 청자 작업과 분청 작업을 병행하고 있는 입장에서 두 작업 간 감각의 차이가 매우 어렵고 미묘합니다. 청자는 완벽성을 추구하는 작업이고, 분청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움과 폭넓은 표현을 담고 있습니다. 완벽성을 추구하다가 답답할 때 분청 작업을 하면 손이 좀 더 편안해지고, 스트레스 해소가 되며 표현의 폭도 넓어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작업을 동시에 병행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극과 극에 가까운 작업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두 작업 모두 거의 동일한 재료를 사용하지만, 재료를 다루고 표현하는 방식과 디자인이 다릅니다.
청자는 재료를 더 정제하고 완벽성을 추구하며, 분청은 거친 재료까지도 수용해 보다 회화적이고 개방적인 표현을 추구합니다. 결국 두 작업의 본질은 같지만, 청자는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공을 들이고 분청은 좀 더 자유로운 감각과 표현을 확장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Q. 반복과 축적의 예술인 도자 작업에서, 작가님께 손으로 빚는 행위는 어떤 시간성과 관계를 만들어내는가요?
A. 도자기는 사람이 사용하는 물건이고, 사람이 만드는 것이며, 결국 자연에서 온 재료를 사람이 손으로 다뤄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작가가 담은 감성과 마음이, 이 도자기를 사용하는 사람에게도 전달되기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듯이 사람이 만든 도자기도 결국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감성적 공감을 표현하는 것이 장인의 자세이고, 그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 도자 작업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도자기는 ‘될 때까지’ 하는 작업으로, 날씨나 자연 조건과도 맞물려 긴 시간과 인내를 요구합니다. 예를 들어, 비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그 비가 오면 다시 시작하는 과정처럼, 도자 작업은 끊임없는 반복과 축적의 연속입니다.
4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흙을 다뤄오면서도, 흙은 여전히 어렵고 늘 새롭게 다가옵니다. 옛날 도공들이 대물림으로 흙과 도자기를 다루며 남긴 유물들은 매우 높은 퀄리티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오랜 숙련과 경험에서 나온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단기간에 그 경지에 이르기는 어렵지만, 긴 시간을 거치며 흙과 교감하고 유연성을 키우면서, 자신의 생각과 작업을 끌어내는 과정에서 사람과 소통하는 즐거움과 의미를 찾는 것이 도자 작업의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철학, 몰입, 그리고 인간
Q. 작업 중 가장 ‘나다움’이라는 감각에 도달하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A. ‘나다움’은 작업하는 특정 순간에만 느껴지는 게 아니라, 도자기를 시작한 그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고민해온 부분입니다. 작업 내내 힘들지 않고 늘 즐겁고 재미있었고, 다양한 물성을 탐구하고 표현하는 과정 자체가 제 인생에서 큰 행복이자 의미였습니다. 그런 즐거움과 행복이 ‘나다움’에 도달하는 본질적인 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거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즉, ‘나다움’은 작업 과정 전체에 녹아 있는, 삶과 예술을 함께 아우르는 깊은 자기 인식과 만족감입니다.---
Q. 선생님의 도예 철학은 시간과 함께 어떻게 진화해왔나요? 도자기를 처음 접했을 때와 지금 내면에서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A.처음 도자기를 접했을 때는 경험이 부족했고 모르는 부분이 많아서, 전통 도공들의 어깨너머 기술과 구전으로 배우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특히 ‘왜 그렇게 만드는지’에 대한 메커니즘을 알지 못해, 경험 범위를 벗어나면 시행착오와 리스크가 컸습니다.
그래서 점차 재료에 대한 과학적 공부와 연구가 필수임을 깨닫고, 재료 공부를 통해 무수한 시행착오를 정리하며 기술적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단순한 노동과 노력뿐 아니라 재료에 대한 이해와 자유로움이 작업의 폭을 넓히고 더 섬세하고 디테일한 표현을 가능하게 했다고 봅니다.
Q. 흙은 유순하면서도 완고한 재료입니다. 수십 년을 함께해온 ‘흙’이라는 존재와의 관계성에 대해 말씀해주신다면요?
A. 흙은 지구에서 가장 풍부한 물질이자 동시에 가장 다루기 어려운 재료입니다. 흙은 생명을 잉태하는 근원이며, 불에 구워져 단단한 그릇이 되는 등 활용의 폭이 매우 넓습니다.
그만큼 흙의 물성을 잘 이해하는 게 중요하고, 이는 화학적인 ‘불’이라는 요소와 결합되어 도자기의 완성을 가능하게 합니다. 흙을 다루는 일은 수분과 무기물 등 흙 안의 요소를 이해하고 조형에 활용하는 과정이며, 불이라는 화학적 힘을 통해 형태와 강도를 완성하는 매우 폭넓고 깊은 작업입니다.
이 과정은 일종의 연금술과도 같아서, 자연 재료를 통제하며 조화시키는 희열입니다. 또한 동양에서 도자기는 단순히 하층민의 노동이 아니라 왕이나 권력층이 직접 관여한 고도의 기술과 철학이 담긴 작업이었기에, 도공들도 높은 지식과 철학을 가진 이들이었습니다.
그런 전통적 DNA가 현대에도 이어져서, 저 역시 흙과 불을 다루는 과정에 깊은 철학과 집중을 담아 작업하고 있습니다.
문화적 맥락과 예술 계보
Q. 고려청자부터 조선 분청에 이르기까지 한국 도자의 흐름을 직접 빚어오신 작가님께 한국 도자의 미감이란 무엇일까요?
A.한국 도자의 미감은 동아시아 도자 문화의 큰 맥락 안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중국, 베트남, 일본 등과 비교해보면, 한국 도자기는 특히 불을 다루는 기술적 완성도가 매우 뛰어납니다. 이러한 기술을 바탕으로 전해진 도자 문화는, 한반도 안에서 독자적인 형태와 미감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외형만 보면 주변 문화권과 비슷해 보일 수도 있지만, 조형의 세부나 터치, 선, 비례감 등에서 한국 고유의 미감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양적으로는 중국이나 일본처럼 대규모로 생산되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개별 작품의 완성도나 조형 언어의 깊이는 세계적으로도 충분히 독특하고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오늘날 도예가들이 작업하는 것도, 이 ‘한반도만의 조형 감각과 미감’을 어떻게 이어가고, 현대적으로 풀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실천의 과정이라 볼 수 있습니다.
Q. 작가님의 작업에 영향을 끼친 스승이나 장인, 또는 동시대 도예가가 있다면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A. 저는 개인적으로 예술가로서의 스승보다는 과거 도자 산업 현장에서 오랜 시간 숙련된 기술과 경험을 쌓아온 장인들에게 큰 감명을 받아왔습니다.
전통적으로 도자 생산은 철저하게 분업화된 구조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흙을 반죽하는 사람, 물레를 돌리는 사람, 유약을 칠하는 사람, 불을 맡는 사람 등 각 분야에 전문 장인이 있었고, 그들의 협업으로 하나의 도자기가 완성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각 분야의 수장 역할을 한 장인들은 기술력은 물론 전체 과정을 조율하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들의 현장 중심적인 태도, 재료에 대한 예민한 감각, 그리고 작업에 임하는 치열한 자세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제가 거의 마지막 세대로 그 현장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도 큰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날 도예가는 모든 과정을 혼자 감당해야 하기에 더욱 어렵고 복합적인 작업이 되었습니다. 흙, 불, 유약, 조형, 건조 등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습니다. 그만큼 도예는 평생을 걸쳐 탐구하고 축적해가야 하는 분야이고, 완성이라는 개념은 끝내 도달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과정’ 자체에 몰입하고, 거기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도자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통의 재현, 고증, 그리고 장인정신
Q. 작가님께서는 단순히 전통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고증을 바탕으로 ‘정확한 재현’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계십니다. 전통을 ‘있는 그대로’ 되살리는 작업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A. 보통 전통과 전승을 이야기할 때, 저는 전승은 기술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고, 전통은 그 원형을 시대에 맞게 해석하고 다시 풀어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도자기의 원형을 복원하고 찾아내는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느끼는 것은 ‘정확한 원형의 해석’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도자기를 온전히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기초라는 점입니다. 과거의 조형 언어가 단지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그것을 깊이 이해하고 현재의 감각으로 다시 해석해야 자연스럽게 현대성과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도 결국 그런 태도를 말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오늘날 도자기의 영역은 조형적인 것부터 실생활까지 그 범위가 훨씬 넓어졌지만, 그런 현실 속에서 원형에 대해 깊이 있는 탐구를 하는 작가들이 많지 않은 것이 늘 아쉽습니다. 젊은 작가들 역시 전통의 기반 위에서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가려는 시도를 더 많이 해보았으면 합니다.
Q. 전통 재현 작업은 때때로 창작의 자유를 제약하기도 합니다. 작가님은 그런 제약 속에서 어떻게 예술적 표현을 이어가고 계신가요?
A. 전통 재현은 단순히 과거의 양식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재현은 ‘그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위한 시작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옛 도공들이 어떤 방식으로 흙을 다루고, 어떤 철학과 의도를 담아 도자기를 빚었는지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런 깊이 있는 이해 없이는 아무리 현대적인 표현을 해도, 그 근거가 빈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통 기술과 제작 방식을 철저히 고증하고, 옛 도자기의 구조와 정신을 가능한 한 깊이 체득하려 노력합니다. 그 위에서 새로운 창작의 길이 열릴 수 있다고 믿습니다.
Q. 작가님께 전통을 계승하는 가장 바람직한 자세란 어떤 것인가요? 그리고 오늘날 많은 작가들이 ‘변형’에 집중하는 흐름 속에서, ‘재현’의 가치가 다시 조명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A. 전통을 계승하는 가장 바람직한 자세는, 과거의 형식을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그것이 오늘날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고,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를 깊이 이해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문화재나 국보로 지정한 도자기들도, 일본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여전히 실생활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점을 보면, 그것이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지금도 유효한 미감과 기능을 갖춘 물건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전통이라는 것은 단절된 과거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되고 ‘살아 있는’ 문화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재현은 단지 복제가 아니라, 깊은 이해와 존중 위에서 새로운 창작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의 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전통의 본질을 올곧게 배우고, 그 가치를 충실히 계승하려는 태도가 오늘날 더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공예의 가치와 지속 가능성
Q. 작가님께서 현재 한국 도자계 혹은 공예 생태계에서 가장 크게 고민하고 계신 점은 무엇인가요?
A. 지금 가장 고민되는 부분은 도자기가 더 이상 생필품이 아니라 ‘기호품’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기호품으로서의 도자기는 예술적인 면이 강조되지만, 그 이전에 누군가의 노동과 시간, 재료가 들어간 ‘만드는 행위’이기도 하죠. 그런데 지난 40여 년을 돌아보면, 도자기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전체적으로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특히 예술 도자기와 상업 도자기 사이, 그 중간 지점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대량생산 기반의 도자기 제조업체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고, 대신 예술성을 중심에 둔 젊은 작가들의 활동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술 도자기는 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고, 일반 소비자들의 구매력과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러한 격차를 좁히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결국 도예가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좋은 문화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소비자층이 넓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단지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장인들이 직접 나서서 역할을 넓히고, 때로는 예술적인 도자기를 만들고, 때로는 보다 접근성 있는 기물도 함께 제작해 ‘폭을 확장해 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공예 생태계가 지속 가능하려면, 예술성과 실용성을 넘나드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도자기들이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이 지금 제가 가장 깊이 고민하는 지점입니다.
Q. 공예가로서 후속 세대를 위해 무엇을 남기고, 어떻게 전하고 싶으신가요?
A. 현재는 고흥에 내려가 그 지역의 흙과 재료들을 찾고 있습니다. 고흥과 전라도 지역은 조선시대부터 도자기 가마터가 밀집해 있었고, 지금도 좋은 자원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 자원들을 단순히 사용하는 것을 넘어서, 학술적으로 연구하고 정리해 후배 작가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제 작업이 결국은 다음 세대가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창작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는 데 기여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좋은 재료와 장소, 기술이라는 자산은 다음 세대의 작가들이 더 깊이 있는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중요한 밑거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토대를 잘 정리해두는 것이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전승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업과 전망
Q. 현재 준비하고 계신 작업이나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요즘은 전라남도 고흥에 내려가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고흥은 도자기 분야에서는 다소 소외된 지역이지만, 역사적으로는 분청사기의 중심지 중 하나였고, 현재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가마터가 있는 곳입니다. 이 지역에서 다시 도자 문화를 활성화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재료를 찾고, 가마를 복원하고 활용하는 등의 기초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궁극적으로는 고흥을, 소규모이지만 국내 젊은 도예가들과 해외 작가들이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실험적 공간으로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특히 분청이라는 장르는 전통성과 현대성을 모두 품고 있어서, 젊은 작가들에게도 매력적인 가능성을 열어주는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경기도나 광주, 김제 등에도 작가들이 모일 수 있는 기반이 있지만, 고흥은 그 역사성과 공간적 특성 덕분에 더 신선한 접점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물론 지방행정 절차나 준비 과정에서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조심스럽고 꾸준하게 준비해가고 있습니다.
Q. 도예 혹은 전통 공예의 길을 걷고자 하는 젊은 작가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A. 도예는 새로운 실험과 도전의 연속입니다. 결국 자신이 알고 있는 만큼 세상을 보고, 그 앎을 바탕으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 ‘앎’이라는 것은 결국 어디까지 추구할 것인가 하는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인에게 중요한 건, 끊임없이 생각하고, 표현하려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작업을 충분히 체득했다면, 이제는 오브제적인 접근이나 물성에 대한 실험을 통해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비가 올 때까지 기울지 않는 마음”으로 작업을 즐기시라**는 겁니다. 잘하려고만 애쓰기보다, 작업 그 자체를 즐기는 마음이 있어야 오래 할 수 있고, 오래 해야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게 도자기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